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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선조와 인조

  • 황원갑 소설가(역사연구가)
입력시간 : 2013/07/12 18:25:24
수정시간 : 2013/07/12 18: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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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우리 민족사에서 나라를 멸망의 위기로 빠뜨린 임금이 많았는데 선조 이균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예나 이제나 국가 최고지도자의 자질이 부족하고 리더십이 없으면 국정은 표류하게 마련이다. 조선왕조는 27명의 국왕 가운데 선조의 재위 기간만큼 다사다난했던 적도 없었다. 그의 재위 중에 동서당쟁이 시작됐고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자질 부족한 지도자 국가 위기 빠트려

선조가 재위 41년 내내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은 도외시한 채 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그의 비정상적 즉위 과정에서 비롯됐다. 선조는 명종이 후사 없이 죽는 바람에 조선왕조 사상 최초로 방계승통에 의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중종의 서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가 낳은 아홉째 아들 덕흥군의 셋째 아들이니 정상적 상황이라면 국왕 후보에도 끼지 못할 서열이었다. 그런 까닭에 선조는 재위 내내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렸으며 이는 결국 신하들과의 불화, 또 아들 광해군과의 불화로도 나타났다.

마치 부정선거로 당선되거나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자들처럼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컸던 만큼 선조의 왕권 안보에 대한 집착은 병적이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피난가면서도 그는 어제는 동인, 오늘은 서인의 손을 들어주는 식으로 당쟁을 자신의 왕권 안보에 악용했다. 또한 장수들을 라이벌로 의심하고 시기해 의병장 김덕령을 죽이고 이순신과 곽재우를 죽이려고 했으니 이는 이적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직전 일본의 사정을 살피고 돌아온 뒤 전쟁이 있을 것 같다는 서인 황윤길의 보고를 무시하고 동인 김성일의 보고를 수용함으로써 '무비유환'의 재앙을 당했다. 전쟁의 조짐이 조금만 있어도 대비를 하는 것이 국가안보의 기본 상식이거늘 선조와 동인들은 왜적이 쳐들어오면 자신들은 무사할 줄 알았을까.

선조는 재위 중 10여 차례에 걸쳐 '임금 노릇 못해먹겠다'며 마음에도 없는 양위극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는 물론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한 쇼였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임진왜란으로 국가가 멸망의 위기를 당했으면서도 유비무환의 교훈을 무시해 또 병자호란을 당했다. 인조 이종은 선조의 다섯째 서자 정원군의 장남으로 태어나 광해군 15년(1623)에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인조는 시대를 역행한 친명사대주의를 추구하는 서인의 추대로 즉위한 만큼 후금(청나라의 전신)과는 적대관계를 유지했다. 후금은 조선과 명나라가 미개한 오랑캐라고 깔보던 여진족이 세운 나라였다.

인조 14년(1636) 청 태종 홍타이지는 국호를 청으로 바꾸었다. 청 태종의 즉위식에 마지못해 참석한 조선 사신들은 "하늘에는 두 해가 있을 수 없듯이 두 종주국을 섬길 수 없다"면서 절을 거부했다. 측근에서 목을 따야 한다고 펄펄 뛰었지만 청 태종은 두 사신을 돌려보내고 조선에 용골대를 보내 인조를 책망하는 한편 이제부터는 형제지국이 아닌 군신지국의 예를 취할 것 등을 요구했다.

조정은 명분론이 우세해 인조는 청국 사신을 만나주지도, 국서를 받지도 않았다. 심지어 사신을 죽여버리자는 말까지 나오자 용골대는 도망쳐 청 태종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했다. 화가 치민 청 태종은 그해 12월1일 몸소 10만대군을 이끌고 심양을 출발해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넜다. 이것이 병자호란의 시작이었다. 청군은 12월10일 안주, 13일 평양, 14일 개성 순으로 무인지경을 가듯 남하했다.

나쁜 역사 되풀이 막게 국민이 깨어야

인조 15년(1637) 1월30일. 인조는 소현세자와 함께 남색 군복을 입고 백관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을 나서 한강변 송파나루 삼전도의 항복식장으로 내려갔다. 인조는 100보를 걸어나가 먼저 맨땅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敲頭), 즉 한 번 절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조아리며 세 차례 절을 했다.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자에게 하루에 열두 차례나 큰절을 올렸으니 치욕도 그런 치욕이 다시없었다.

그렇게 사상 전례 없는 치욕을 당한 인조는 전쟁이 끝나자 인질로 끌려갔다 돌아온 소현세자를 왕권 안보의 걸림돌, 즉 정적으로 여겨 독살했으며 며느리 강씨와 두 손자까지 죽여버렸으니 참으로 비정하고 악랄한 아비요, 시아비요, 할아비요, 임금이었다.

나쁜 역사는 되풀이된다. 천성이 잔인하고 교활한 지도자, 무능한 지도자, 사안마다 좌고우면하고 우유부단한 지도자, 존재 자체가 재앙 같은 지도자가 끌고 가는 나라의 앞날에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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