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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날=연차휴가… 수당은 남의 얘기
■ 중소·중견기업의 도 넘은 휴일 '떼먹기'
설날·크리스마스도 연차휴가일로 간주… 청년취업 기피 부추겨
입력시간 : 2013/03/18 16:57:09
수정시간 : 2013/03/19 17: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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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해 대기업 계약직에 있다가 중소기업 정규직으로 자리를 옮긴 회사원 A씨(32)는 입사 때부터 "회사가 바쁘니 연차는 없는 것으로 하자"는 사장의 주문에 따라 계약서에 사인을 해야 했다. B씨는 이에 따라 정기휴가인 4~5일을 제외하고 연중 아무런 휴일이나 대체수당없이 근무 중이다. B씨는 "중소기업의 경우 증시 상장회사들조차도 휴무나 연차수당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게 대부분"이라며 "대기업에서는 계약직조차 연차휴가나 수당을 확실히 챙겨줬는데 중소ㆍ중견기업들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휴가를 줄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2. 지난해 한 중견기업에 입사한 회사원 B씨(29)는 지난해 8월 회사에서 정한 일주일짜리 여름휴가를 다녀온 뒤 그달 월급이 평달보다 1/4 가량 적게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공휴일이 낀 달마다 월급이 조금씩 적게 나와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번 경우는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부서장에게 월급이 왜 적게 나온 것인지 따져 물었다가 되레 무안만 당했다. B씨는 "해당 부서장이 '회사가 쉬라고 했어도 어찌됐든 일 안 한 것은 맞으니 월급이 적게 나온 것은 당연하다'고 쏘아붙였다"고 전했다.

줄기차게 정부와 대기업의 지원을 요구해온 중소ㆍ중견기업들이 법정 공휴일을 연차휴가일로 간주해 휴가도 안주고, 수당도 주지 않는 '샤일록 경영'을 일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처럼 근로 환경을 악화시키는 관행이 상장기업 등 규모가 있는 중견기업에서 비일비재해 청년층의 취업 기피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계에서는 기업에 인재가 몰리지 않는다며 아우성만 칠 것이 아니라 중견기업 스스로 직원 처우를 개선하는 인사관리 업그레이드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18일 고용노동부의 '2012년 기업체노동비용조사 근로시간 시범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29인, 30~99인, 100~299인 사업장에서 근로자들이 소진한 연차휴가 사용비중은 각각 59.7%, 56.1%, 54.4%로 300~499인(50.3%). 500~999인(51.3%), 1,000인 이상(48.3%) 등 대기업 사업장에서보다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중소ㆍ중견기업들이 신정, 설날, 추석, 삼일절, 광복절,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 일명 '빨간날'로 불리는 공휴일을 근로자 연차휴가일로 정해 나타난 착시효과라는 지적이다.

C공인노무사는 "공휴일을 별도로 두고 유급휴가와 수당을 챙겨주는 대부분의 대기업들과는 달리 노동조합이 없거나 근로자의 힘이 약한 대부분의 중소ㆍ중견기업들은 공휴일을 근로자 연차휴가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2013년의 경우 평일에 지정된 공휴일만 총 12일로 중소ㆍ중견기업 입장에서는 2년차 근로자 기준으로 1년 동안 정기휴가 3일 정도만 주면 유급휴가에 대한 수당 부담은 전혀 없게 되고 연차도 대부분 소진한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IT 관련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D씨는 "이제껏 3군데 중소ㆍ중견기업을 거쳤는데 모든 회사가 공휴일을 연차휴일로 돌리고 나머지는 연말께 의무적으로 쉬게 하면서 수당은 한푼도 못받았다"며 "작은 회사에 들어오면 쉬지도 못하고 고생만 한다는 인식이 늘어나는 이유"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공휴일의 경우 사측과 근로자간 계약에 따르기 때문에 회사마다 적용하는 바가 다르다"며 "따로 통계를 내지는 않지만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공휴일을 연차로 쓰는 경우도 있어 연차 사용률이 높게 나오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C공인노무사는 "중견기업 대표들과 근로조건을 설계하다 보면 대부분의 대표들이 다른 부분은 포용하면서도 유독 근로자 휴무에 대해서는 절대 모두 보장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곤 한다"며 "현행법상으로는 회사 사규에 공휴일을 유급휴가로 명시하고 있지 않을 경우 공휴일에 급여 차감을 당해도 근로자는 할 말이 없다"고 설명했다.

산업계와 노동계에서는 이에 대해 중소ㆍ중견기업들의 근로 여건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국내 중소업계의 발전을 꾀하기 힘들다고 우려하고 있다. 청년층이 취업난 속에서도 대기업, 공무원 등으로만 무조건 발길을 돌리는 데는 중소ㆍ중견기업들의 책임도 있다는 것. 최근 정부기관들이 앞다퉈 중소ㆍ중견기업과 청년층을 이어주는 인력매칭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데 인재가 몰릴 수 있는 환경을 먼저 구축하지 않으면 정부나 사회가 아무리 지원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제 대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해야 하는 중견기업의 경우 정부 지원 요구에 앞서 인력관리 시스템을 대기업에 준하게 개선하는 등 자구노력부터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E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휴가를 공휴일로 채우는 것은 상당히 비합리적인 것이 사실"이라며 "중소ㆍ중견기업들도 이제는 근로자와 회사가 함께 성장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차휴가란


연 최대 25일… 휴가 안가면 수당 지급


현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년에 80% 이상 출근한 사람에 대해 이듬해 돌아가는 연차휴가는 총 15일이며 이후 매 2년마다 하루씩 늘어나다가 총 25일이 되면 더 이상 늘지 않는다. 만약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이는 회사에서 수당으로 보전해줘야 한다. 그러나 일반 기업의 경우 사규에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명시하지 않았다면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공휴일까지 연차휴가로 돌릴 수 있다. 근로자를 최대한 많이 출근케 하고 연차수당은 주지 않으려는 꼼수다. 공휴일은 현재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만 나와있는 것으로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사실상 공무원을 제외하면 해당이 안되게끔 돼 있다.

게다가 근로기준법 연차 유급휴가 관련 내용 가운데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는 부분도 회사에서 쉽게 악용하는 사항이다. "근로자가 쉬면 경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고 주장만 하면 근로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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