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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억弗 기부한 갑부… 그가 찬 시계는 15弗
아름다운 부자 척 피니
■ 코너 오클리어리 지음 / 물푸레 펴냄
어머니가 보여준 선행 본받아 남몰래 자선 실천
세계적 면세점 사업가 척 피니의 베품의 삶 소개



강동효 기자 kdhyo@sed.co.kr

척 피니(앞줄 왼쪽)가 세운 자선재단인 애틀랜틱 재단의 이사들이 신분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변장을 하고 있다.

1997년 자신이 세운 세계적 소매 면세점 듀티 프리 쇼퍼스(DFS)를 매각한 뒤의 척 피니(왼쪽)와 동료 하비 데일.

1997년 1월 23일 목요일자 뉴욕타임스는 미국 전역을 깜짝 놀라게 했다. '15년 동안 뉴저지 출신의 사업가가 대학과 의료센터, 그 외 일반인들에게 6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4,400억 원)를 기부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됐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혜자들은 기부자가 누구인지 몰랐다.'

세계적인 면세점 사업가로 1988년 포브스 선정 미국 갑부 23위에 오른 척 피니의 자선 행위가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그 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피니의 사생활도 일부 보도했다. '억만장자인 피니는 15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비행기도 늘 이코노미 클래스만 이용했다.'

척 피니는 현재 40억 달러(약 3조 8,000억 원)가 넘는 재산을 기부했고, 자선사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자는 지난 수년간 피니와 주변 친구들을 인터뷰하며 억만장자의 삶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유년기부터 전재산을 기부하는 순간까지 인상적인 사건 위주로 재구성했다. 그의 기부 철학은 환경적 요인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피니가 어렸을 적 그의 어머니가 보여준 선행은 뇌리 깊숙이 박혔다. 피니의 어머니는 루게릭 병을 앓는 이웃이 버스를 타기 위해 매일 걸어서 정류장까지 간다는 걸 알게 됐다.

그녀는 늘 차로 그를 태워줬는데 그 방식이 독특했다. 그녀는 이웃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자신도 어디로 가는 중에 우연히 만난 것처럼 행동했었다.

그의 어머니처럼 피니도 자신의 기부를 어딘가에 떠벌이고 싶지 않았다. 유대계 철학자 마이모니데스의 말처럼 '주는 사람은 받는 사람에 대해 모르고 받는 사람도 그 돈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게 베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그의 자선금은 대부분 교육ㆍ의료 등 공적 부문에 쓰이는 데 여기도 이유가 있다. 가난한 아일랜드계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성공 요인으로 자신이 장학금을 받고 코넬 대에서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늘 감사했다.

실제 그에게 엄청난 부를 안겼던 면세사업의 동료들은 대부분 코넬대 동창들이었고, 사업이 번창하는 데에도 코넬대 인맥이 상당부분 작용했었다. 이 때문인지 피니는 6억 달러(약 5,700억 원) 이상을 코넬대에 기부했었다.

책에는 아름다운 기부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당시 대기업들이 모두 외면했던 면세 사업에 뛰어들어 끊임 없이 시장을 개척한 피니의 성공 전략은 잭 웰치의 자서전 '끝없는 도전과 용기'에 버금간다.

그는 사람들이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섬들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았다. 하와이, 괌, 사이판… 지금 관광지로 각광 받는 지역을 개발해 면세점을 세운 건 피니가 세운 회사 듀티 프리 쇼퍼스(DFS)였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한 가수의 끊임없는 기부가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손꼽히는 거부들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뒤 여론 무마용으로 기부를 발표하는 수준이다. 기부 환경이 척박한 우리나라에 피니가 평생 금언으로 여긴 아일랜드 속담 하나.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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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8/02/15 16:04:37